강박을 겪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돼”라며 그것을 억누르려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생각을 없애려는 시도가 오히려 생각을 더 강하게 만든다. ‘곰 생각하지 말라’는 말처럼, 피하려 할수록 더 선명해지는 것이 바로 불안한 생각이다. 이때 필요한 접근이 바로 ERP(노출 및 반응 방지 요법, Exposure and Response Prevention)이다.
ERP는 불안을 유발하는 자극에 노출되되, 그에 따라 하던 강박 행동은 하지 않도록 훈련하는 치료법이다. 예를 들어 오염 강박이 있는 사람이라면 일부러 손을 더럽힌 후 손을 씻지 않고 참는 연습을 한다. 처음에는 극심한 불안이 올라오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뇌는 그 자극이 실제 위협이 아니라는 것을 학습하게 된다. 반복을 통해 뇌의 불안 회로가 차츰 안정되는 것이다.
ERP 치료의 핵심은 불안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불안에 반응하는 방식을 바꾸는 데 있다. 생각은 스스로 떠오르는 것이기에 통제할 수 없지만, 그 생각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훈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혹시 내가 실수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도, 거기에 휘둘리지 않고 흘려보내는 태도를 연습하게 된다. 처음엔 낯설고 어려우나, 불안을 견디는 능력은 반복을 통해 확실히 향상될 수 있다.
ERP는 단기간에 끝나는 마법 같은 치료는 아니지만, 과학적으로 검증된 강박 치료의 핵심 방법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생각을 없애려 하지 않고 그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일상을 이어가는 연습이다. 강박은 불안을 없애는 방식이 아니라, 불안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생각은 멈추지 않아도, 삶은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