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은 흔히 스트레스나 생활 습관 탓이라고들 하지만, 최근 뇌과학 연구에서는 좀 더 흥미로운 해석을 내놓고 있다. 바로, 뇌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잠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미국 UC버클리 수면과학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불면증을 겪는 사람들의 뇌는 미래의 부정적인 가능성을 시뮬레이션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니까 실제로는 아무 일도 없지만, 뇌는 이미 재난 상황을 상상하며 경계 태세를 풀지 않는 것이다.
이 과정에는 뇌의 전두엽과 편도체가 핵심 역할을 한다. 전두엽은 계획과 판단을, 편도체는 공포와 감정을 담당한다. 두 영역이 과도하게 연결되면 ‘혹시 내일 발표에서 실수하면 어쩌지’, ‘문자가 안 온 건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어서일까’ 같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렇게 뇌가 위험에 대비하려는 모드로 접어들면, 몸은 자려고 해도 뇌는 절대 수면을 허락하지 않는다.
놀라운 점은 불면증이 있는 사람의 뇌는 실제로 수면 중에도 ‘반쯤 깬 상태’라는 것이다. 하버드대 연구에 따르면, 불면증 환자의 뇌는 깊은 수면 상태에서도 고주파 뇌파가 유지된다. 이건 마치 스마트폰이 화면은 꺼져 있어도 백그라운드에서 계속 앱이 돌아가고 있는 것과 같다. 당연히 아침에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고, 잤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또한 수면 부족은 기억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잠을 제대로 못 자면, 뇌는 감정적으로 강렬한 정보만 우선 저장하고 평범한 정보는 잘 정리하지 못한다. 특히 부정적인 경험은 더 선명하게 기억되고, 감정적으로 왜곡된 상태로 남는다. 이 때문에 불면증은 우울감이나 불안 증상을 더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만들게 된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은 사실 뇌가 우리를 지키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는 점이 흥미롭다. 야생에서 위험을 피하기 위해 민감하게 깨어 있어야 했던 원시 본능이 현대 사회에서도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단지 그 대상이 사자나 늑대가 아니라 이메일, 인간관계, 회사 일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이럴 땐 뇌에게 ‘지금은 괜찮다’고 알려줄 필요가 있다. 연구에 따르면 명상이나 느린 복식호흡은 편도체의 과잉 활동을 줄이고 뇌파를 안정시켜 숙면을 돕는다. 자기 전 조명을 줄이고 전자기기를 멀리하는 것도 멜라토닌 분비에 도움이 된다. 결국 뇌가 경계를 풀도록 도와주는 것이, 진짜 숙면의 비결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