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는 완벽해 보이는 직장인 김 모 씨는 회사에서 늘 웃는 얼굴로 통한다. 업무 능력도 탁월하고 대인 관계도 원만해 주변의 부러움을 사지만,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그는 씻을 힘조차 없이 쓰러진다.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밀려오는 공허함과 알 수 없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김 씨와 같은 상태를 ‘고기능성 우울증(High-Functioning Depression)’ 또는 ‘가면 우울증(Smiled Depression)’이라고 진단한다. 이는 겉으로는 사회적 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하지만, 내면은 심각한 우울증으로 곪아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일반적인 우울증 환자들이 무기력증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것과 달리, 고기능성 우울증 환자들은 타인의 시선을 과도하게 의식하며 자신의 우울감을 감추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밝은 모습(가면)을 유지하는 데 막대한 심리적 에너지를 소모한다.
미국의 건강 전문 매체 헬스라인(Healthline)에 따르면, 고기능성 우울증은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들에게서 더 자주 발견된다. 이들은 자신의 우울함을 나약함으로 치부하며, 남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고통을 숨긴다.
“내가 배가 불렀구나”, “의지가 부족해서 그렇다”라며 스스로를 자책하는 경우가 많아 병을 키우는 주된 원인이 된다. 하지만 뇌과학적으로 볼 때 이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세로토닌과 도파민 등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이 지속되고 있는 병적인 상태다. 가면 우울증이 위험한 이유는 주변 사람들이 눈치채기 어렵기 때문에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기 쉽다는 점이다. 심지어 환자 본인조차 자신이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겉보기에 문제가 없다는 이유로 “힘내라”는 식의 섣부른 위로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이들은 이미 남들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써가며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이 증상이 장기화되면 번아웃 증후군이나 신체화 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이유 없는 두통, 소화 불량, 만성 통증 등이 나타난다면 이는 억눌린 감정이 신체 증상으로 표출되는 신호일 수 있다. 또한 가면 뒤에 숨겨진 고립감은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질 위험이 일반 우울증보다 더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겉으로 보이는 성공과 밝은 미소가 정신 건강을 보장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치유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한다. 자신의 취약성을 인정하고 가까운 사람이나 전문가에게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는 용기가 필요하다. 억지로 긍정적인 척하는 것은 뇌를 속이는 행위이며, 결국 더 큰 반작용을 불러온다. 이제는 사회적 가면을 잠시 내려놓고 자신의 내면을 돌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