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도 잘 되고, 주변 사람들과도 갈등이 없고, 건강에도 큰 이상이 없다. 그런데도 마음은 무겁고, 웃고 있어도 어딘가 공허하다. 이런 감정을 느낄 때면 스스로도 당황스럽다. “이 정도면 감사해야지, 왜 나는 우울할까?”라는 생각에 자책이 시작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울은 반드시 외부 사건과 연결되어야만 생기는 감정은 아니다. 겉으로 평온해 보여도, 내면에서는 전혀 다른 감정이 일어나고 있을 수 있다.
우리의 감정은 환경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감정은 신경전달물질, 호르몬, 뇌 구조의 작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생물학적 현상이다. 특히 세로토닌,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 같은 뇌 화학물질의 균형이 깨지면 명확한 이유 없이도 기분이 가라앉고, 의욕이 줄어들 수 있다. 이는 뇌의 감정 처리 회로가 잠시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환경이 아무리 좋아도, 뇌가 안정되지 않으면 마음은 흔들릴 수 있다.
또한 지금 우울하다고 해서 반드시 지금 일이 원인이라는 보장은 없다. 과거에 충분히 소화되지 못한 감정, 억눌렀던 상처, 끝내 말하지 못한 감정들이 오랜 시간 마음속에 쌓이면, 안정적인 환경 속에서도 문득 튀어나올 수 있다. 오히려 바쁜 일상 속에서는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여유가 생기거나 외부 자극이 줄었을 때 우울이 드러나는 경우도 많다.
우울의 원인을 외부에서만 찾으려 하지 않아야 한다. 환경이 괜찮은데도 기분이 무거운 날은, 내 뇌와 마음이 보내는 미세한 경고일 수 있다. 이럴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는 것이다. 이유 없는 우울도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는 감정이며,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회복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 감정은 논리보다 정직하다. 마음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