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Estate

이사보다 수리? 높은 금리가 낳은 ‘집 고쳐 사는’ 미국의 새 풍속도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속도가 시장의 기대보다 느리게 진행되면서 기존 주택 소유주들의 행동에 뚜렷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집을 팔고 더 넓은 곳으로 이사하는 대신, 지금 사는 집을 고쳐 쓰는 방향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배경에는 이른바 ‘금리 잠금 효과(Lock-in Effect)’가 있다. 팬데믹 시기 2~3%대 초저금리로 고정 대출을 받아둔 소유주들이 현재 6.5%대의 금리로 새 대출을 받을 경우 월 납입금이 기존 대비 40~50% 가량 늘어나게 된다. 연방주택금융청은 이 효과로 인해 2022년부터 2024년 사이에만 약 172만 채의 주택이 매매 시장에 나오지 못했다고 추정했다. 2025년 Bankrate 설문에서도 미국 주택 소유주의 54%가 어떤 금리 조건에서도 집을 팔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기존 집에 자본을 재투자하는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새 모기지를 받는 부담 없이 집의 가치 상승분을 담보로 자금을 빌리는 주택자산 담보부 신용라인(HELOC) 활용이 늘어난 것이 대표적이다. 2025년 1분기 HELOC 인출액은 17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다만 한 가지 짚어야 할 부분이 있다. HELOC 사용이 증가하고는 있지만, 그 자금이 리모델링보다 부채 통합 목적으로 쓰이는 비중이 오히려 커지는 추세다. 주거 개보수 목적 비중은 2022년 65%에서 2024년 46%로 줄었고, 부채 대환 비중은 같은 기간 25%에서 39%로 늘었다.

리모델링 시장 자체도 단순히 ‘호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버드대 주거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주택 개보수 지출 규모는 2022년 정점(약 5,150억 달러)을 찍은 뒤 2023~2024년 2년 연속 하락했으며, 2025년에야 전년 대비 약 1.2% 증가하는 수준으로 완만하게 회복되고 있다. 이를 두고 ‘나 홀로 호황’이라고 말하기보다는, 팬데믹 이후 과열 국면을 지나 안정화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다만 시장 규모 자체는 여전히 연간 5,000억 달러를 상회하는 수준으로 크고, 2026년에는 5,24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이사를 기피하는 소유주들이 늘면서 시장에 나와야 할 매물이 묶이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고, 이것이 다시 집값을 끌어올리는 악순환 구조는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2025년 들어 금리 잠금 효과가 서서히 풀리는 신호도 감지된다. 새로 6% 이상의 금리로 대출을 받은 소유주 비율이 점차 늘어나면서, 초저금리를 고수해야 할 유인이 과거보다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금리가 의미 있는 수준으로 내려오기 전까지는 집 고쳐 사는 기조가 이어지겠지만, 그 강도는 2022~2023년의 전성기보다는 완화된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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